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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기이한 기계장치의 실루엣

A1-3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안전하게 함선 안에서 전달받을 수 있는 데이터 자료들로 해당 행성에 대해 탐험하자는 쪽과 기왕이면 직접 가서 눈으로 실제 상황을 확인하자는 쪽. 어느 쪽도 현명한 선택이었으나 레온 램버트가 선택한 쪽은 후자였다. 일단 명목상인 공적인 부분으로는 혹시라도 직접 탐사에 나설 연구부를 위해 사전에 탐사에 뛰어들어 행성의 위험성을 몸소 파악해야 한다는 이유와(생명체 말고도 다른 위협이 존재할지도 몰랐다) 더불어 정크의 내장 카메라라면 희뿌옇게 오염된 대기 속에서도 더 선명하게 행성의 풍경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더 밀접한 곳에서 자료 사진과 영상을 찍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고, 사적인 부분으로는 고대 문명이 있었던 흔적과 건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는 점과 레온의 입장에서 ‘매우 신경 쓰이는 정보’를 들은 것도 컸다.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녹슨 기계들’. 이것만으로도 레온 램버트의 호기심 (혹은 그의 로봇에 대해 지대하다 못해 집요하기까지 느껴지는 하트 다섯 개 만점 분량 중에서 다섯 개 만점에 해당하는 애정이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는데,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 비슷한 것을 보인다는 점도. 이 땅에서 생명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고 하니 (모든 생명체가 멸종한 시기는 최소 300년 이상 전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분명 이것은 로봇의 움직임이 분명할 것이다. 다른 행성 다른 문명의 기계를 직접 확인할 지상최대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던 레온은 직접 탐사에 뛰어들기로 했다. 물론, 매뉴얼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한 채로. 행성의 대기 역시도 총화기를 사용하기 적절한 대기라 해서, 레온은 평소 사용하던 무기들 외에도 적절한 총화기 역시도 챙겨 가기로 했다. 총화기 중에서는 저격 소총이 레온의 손에 가장 잘 맞는 무기였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시간을 고려한 결과 휴대성 면에서 강점을 자랑하는 자동권총을 가져가기로 했다. 이번 탐사에도 어김없이 활약해줄 예정인 정크는 이미 새로운 외장으로 갈아 끼운 지 오래였다. 레온이 이번 행성의 탐사에 적절하다 파악한 갯과 동물형의 외장으로, 방사선에 대비해 외장에 코팅제도 꼼꼼히 발라두었다.


*


A1-3의 지상은 함 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황량했다. 황량하다 못해 그 광경은 참혹하다… 고 해야 할까. 높게 솟은 마천루의 잔해하며 곳곳에 널려 있는 지적 생명체의 종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뼈대들이 명백히 이곳에 문명이 있었고, 생명체가 살고 있었고, 한때는 찬란했던 과거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섬세하거나 연구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이들의 말로에 애도를 표하거나, 남겨진 잔해를 통해 이들의 역사나 과거에 관심을 보이거나 추론해내는 방식으로 오래전 A1-3 (분명히 이 행성도 번성하던 시절엔 달리 불리는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에 분명히 존재했을 이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떠올렸겠으나,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감수성이라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지적 호기심은 자신의 관심 분야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한 레온 램버트라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그저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는 사적인 목적의 만족감을 채우자마자 곧바로 잔해들에 대해서 크게는 ‘연구부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샘플’, 보다 상세하게는 ‘스피카에서 가장 큰 건물보다 엄청나게 큰 건물’, ‘사람보다 몇 배는 큰 무지하게 큰 생명체의 뼈대’ 정도로만 평했을 뿐이었다. 물론 다소 심심한, 사람에 따라서는 무식하고 냉정한 평가와는 달리 레온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실물 자료를 상세히 찍고 기록해두었다. 연구부 사람들이 더욱 확실한 정보 값을 얻을 수 있도록.

어찌 됐든 과거 이 행성의 누군가가 살았던 증거나 흔적들은 연구부 사람들이 상세히 규명해줄 일이지, 레온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연구부 사람들이 더욱 확실한 진실에 가까운 추론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고, 두 번째는 그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레온이 지금까지 오면서 확인했던 금속성 물체들은 전부 무언가로 인해 새까맣게 타버리거나 처참하게 박살이 나 버린 잔해들뿐이라 온전한 형태를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게다가 탐사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하루 8시간이라니! 매일매일 탐사를 나가도 온전한 기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온전한 형태의 기계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을 그 자리에서 해체해 조사하는 것은 물론 함 내로 가져와 메데이아에게도 분석을 맡길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그 구조를 알 수 있으면 좋겠다, 26세기 콜로니의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이면 좋겠다고 기대하면서.


‘잔해 형태로 파악하건대 기계는 여러 가지 형태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형태를 보아하니 애완 로봇보다는 높은 확률로… 무인 병기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니면 꽤 폭력적인 경호 안드로이드라거나.’


잔해에서 발견되었던 다양한 크기의 날붙이와 포신으로 추측되는 부품, 그 외 인간의 추측으로는 알 수 없는 부품들을 떠올리며 레온은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추측했다. 그 와중 정크의 카메라에서 삐삐삐, 경고음이 울리는 동시에 등줄기가 본능적으로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레온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그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었는데, 그가 몸을 뒤튼 자리로 정확하게 레이저 빔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기계가 다음 타겟을 자신으로 돌리기 전에 레온은 재빠르게 몸을 굴러 건물 잔해 뒤로 몸을 숨겼다. 두 번째 레이저 빔이 방금까지 발을 딛고 서 있던 자리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을 본 레온은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정크보다 나를 노린 걸 보니 이놈, 아무래도 생체 신호를 주로 감지하는 타입이고, 그쪽을 최우선으로 노리도록 설계된 모양이었다. 어쩌면 아까 정크의 경고음 소리에 반응한 것일지도. 레온은 자신의 추론이 맞나 확인할 겸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와, 치사하다! 난 저런 빔 포를 발사하는 기술 따위는 로봇 만화에서나 나오는 허무맹랑하고 허접하기 짝이 없는 기술일 줄만 알았다고! 넌, 당장, 내 손에 조져지면, 1빠따로, 해부 당첨이다!”


레온의 추측은 정확했다. 생명체를 감지하는 다른 타입의 기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이 타입의 기계는 ‘소리’를 우선으로, 그 다음으로는 타깃의 생명 반응을 감지하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너무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른 것이 원인인지, 잔햇더미 속에 있던 다른 금속형 물체들 역시도 레온의 소리를 감지하곤 일어나 딸그락딸그락 잘그락잘그락 덜그럭덜그럭 위이잉 기이잉 철커덩 그 외 금속형 물체들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바로 이 한 자리에서 들은 레온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잠자는 철근 숲의 공주들도 아니고. 단잠을 깨워 잔뜩 성이 난 듯한 철근 숲의 공주들(금속형) 여럿에게 에워싸여진 꼴이 된 레온은 질렸다는 듯이 으윽, 하는 소리를 냈다. 아, 살면서 단 한 번도 인기 있어 본 적 없는데 이런 파티의 주역이 되다니.


“잠자는 기계 숲의 공주들이 왜 이리 많아? 전 콜로니 굴지의 레온 램버트 숙면 출장 서비스에 어서 오세요!”


한 번의 뻘짓으로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 와도 그 상황을 두고 도망가지 않는 것, 농담할 틈이 없을 때도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것, 그것이 바로 레온 램버트의 아이덴티티였다.

자, 온다!
기계들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줄 시간이었다.


*


빔 병기를 쏘는 물체는 예상보다 빨리 기능을 멈추는 편이라, 대처라고까지 할 것도 없었다. 무너진 잔해나 건물 뒤로 날아오는 공격을 몇 번 피하다 보면 싱겁게 뻗어 버렸으니까. 빔 한 번을 쏠 때마다 들어가는 에너지량이 큰 것인지, 아니면 물체 자체가 세월(그것도 오염된 공기에 오래도록 노출된)을 못 이긴 결과인지는 분석을 부탁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의외로 성가신 것들은 실탄 형태의 무언가를 쏘거나 하는 것들이었는데, 이놈들은 시야각 외에서 공격을 하는 터라 거진 소리 내지 특수 시각 장치를 활용해 위치를 파악해야 했으며, (총기류가 다 그렇지만) 하나같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것을 쏴대는 바람에 자칫하면 보호복의 안전과 함께 목숨줄도 위협할 수도 있어 보이는 최고로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들이라 안전한 곳에 숨어 녀석들에게 총질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레온은 속으로 저 아까운 놈들을 내 손으로 파손시킬 수밖에 없다니, 라며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포신만 노려 쏘는 방법이 있었으나 다각도에서 접근하는 적을 신경 쓰면서 포신만 노려 쏘기엔 상황이 촉박한 데다가 탄알도 아껴야 했다.) 가장 성가신 점은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대응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근접 공격을 시도하는 녀석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었는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면서도 몸통박치기 공격을 하는 놈이나 거기에 더해 날붙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쩔걱거리면서 들이대는 놈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레온은 녀석들이 소리에 먼저 반응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그와 떨어진 곳에 있는 정크가 소리를 내게 만들고는, 기계들이 그쪽에 반응할 때 재빨리 원거리 공격을 하는 놈들을 공격하고, 다시 자신에게 반응하면 정크가 있는 방향으로 시야를 돌리게 만드는 식으로 시간을 벌었다. 탕, 또 한 방.

레온 램버트식의 과장을 보탠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다를 때마다 레온은 생각했다. 죽을 일은 없겠지만 죽는다면 뭐가 제일 아쉬울까? 왜 이 상황에서 이아나에게 못다 한 대답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온은 그것이 이아나가 잊을 수 없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라니! 그런 건 렉시 누나만 할 줄 알았는데! 게다가 내가 대답을 안 했는데도 집요해! 그 점이 이아나답지만!) 어쨌든 이아나가 몇 번씩이나 물어본 이 질문에 대답은 해 줘야 할 텐데, 레온은 아직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고 (그냥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면 ‘없다’라고 대답하면 될 것을, 레온은 자기가 왜 이아나에게 명백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 알지 못했다. 단지 본인은 맘속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알렉산드라가 보낸 메일과, 스퉈돗이 자신에게 했던 충고와 상관관계가 없지는 않다는 짐작을 했을 뿐이다), 핀 씨에게 나비의 평생 무상 A/S도 약속했고, 라인하르트 씨와 초콜릿 촌평회 2회차도 해야 했으며, HUHF 달 기지에 있는 기계는 다 뜯어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 전 콜로니 굴지의 1인기업 레온 인더스트리(업종 변경 가능)의 홍보 활동과 영업도 아직 다 못 끝냈으며, 파종절 봄맞이를 나눠주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도 해야 하고 은퇴하면 우주 골든 햄스터 판권도 사야 하고 남은 생에 뜯어보고 조립해야 할 로봇도 많고 그 외 기타 등등. 아쉬울 건 차고 넘쳤다. 아무튼 여기서 죽는 건? 레온 램버트의 인생 계획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저 눈앞에서 설치고 있는 미지의 기계를 잡아 뜯어 분해를 해 봐야 직성이 풀릴 거 같은데 저놈들 손엔 절대로 못 죽지. 암! 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금 총탄이 날아왔던 방향 쪽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레온의 감이 맞았는지 총탄이 그 녀석의 몸통을 꿰뚫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원거리에서 상대하는 놈들은 얼추 정리됐고, 이제는 근접전을 쓰는 놈들만 남았다. 날카로운 쇠붙이를 들어 올려 찌르기 공격을 시도하는 놈 하나와, 회전 톱의 날붙이와 같은 원형의 날붙이를 회전시키며 달려드는 놈 하나. 이렇게 두 놈이 레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온은 처음 무작정 자신을 향해 달려든 놈은 진압봉을 휘둘러 멀리 쳐 내고, 날붙이를 회전시키며 덤벼드는 다른 한 놈의 날붙이를 진압봉으로 솜씨 좋게 막아냈다. 진압봉과 닿은 쇠붙이가 가가가각 하고 고막을 찢을 정도로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다가 이내 사그라들고는, 그대로 기능을 멈추고는 눈앞에서 맥없이 쓰러진다. 다행스럽게도 이놈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능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원래 그런 녀석들인지, 아니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세월을 못 이기고 낡아 못 쓰게 되어서 그런지는 몰랐다. 물론 자세한 건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레온은 후자의 경우라고 짐작했다.


*


싸움판도 대충 정리됐겠다, 레온은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머릿속에 니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제발 무언가를 저지르기 전에 가끔은 생각 좀 하고 움직이렴, 레너드 램버트. 안 그러면 호되게 당할 일이 생길 거란다. 방금처럼.’ 물론 레온이 아는 니나는 이런 소리를 하지 않을 사람이고 오히려 ‘그래도 열 번 중 한 번은 대책을 세워 보도록 하렴. 가끔 네가 걱정된단다.’라는 말을 했을 사람이지만. 이미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레온은 니나가 말한 그 열 번 중 한 번의 대책을 이번 탐사에 세워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싸움은 기록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레온 램버트 역사적인 싸움의 현장 겸 충분히 사람들을 위협할 만한 요인으로.”


메데이아의 분석 결과에서 사람을 위협할 만한 생명체는 없다고 했지만, 이 기계는 명백한 위협 요인 중 하나였다. 레온은 진압봉 끝으로 금속성 물체를 뒤적이면서 탐사를 마치고 돌아가면 곧바로 메데이아에게 따질까(“이 행성에 위협 생명체가 없긴 왜 없어요! 저 완전 죽을 뻔했다고요!”) 하다가, 어쨌든 기계장치는 생명체가 아니니까 메데이아가 틀린 판단은 하지 않았지…싶어져 그에게 따지는 건 철회하기로 했다.

일 대 다수의 싸움(물론 이렇게 판이 짜여진 것은 레온의 부주의가 자초한 결과였지만)이 그렇듯 꽤 치열한 싸움이었다…라고 레온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정크를 전투 분석 형태로만 썼지 병기 형태로는 쓸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이 기계들을 보니 다음 개조에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방어 기능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쯤 들었다. 전기 충격 정도면 대충 통하지 않으려나? 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어쨌든 여기 살던 지적 생명체들이 생전에 어떤 취향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기계 만드는 취향은 26세기 현대인인 레온의 입장에서 보건대 이들은 매우 고약한 취향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메데이아가 추측해 낸 이 행성의 말로를 생각하면, 어쩌면 정말 살상용 병기들이었을지도 모르지… 기계를 되도록 파손시키지 않을 목적으로 (이 녀석들은 레온에게도, 연구부에게도, 나아가 어쩌면 전 콜로니 인류에게도 있어 매우 중요한 샘플이었다!)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싸움을 백병전으로 해결하려 했던지라, 그 와중 보호복이 찢겨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레온은 미지의 기술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준 26세기의 기술에 새삼 감탄하며, 가족들이 말하곤 하던 말, 램버트 가문의 가훈이자 신념을 다시 떠올렸다. ‘기술과 발전은 누군가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 말 뒤에 이것을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레온 램버트의 삶도!’

기계장치가 완벽히 기능 정지를 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레온은 기계장치를 들어 올리고는 손에 걸린 이 괘씸한 녀석을 당장 이 자리에서 분해해 보기로 했다. 제일 편한 건 바닥에 내려치거나, 무기로 내려치거나 발로 밟는 등 외부에 강력한 (분풀이를 조금 실은) 충격을 가해서 박살 내는 방법이었지만 이 미지의 기계를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고생을 자처했던 레온은 (한 번쯤은 스피카 정통의 방식으로 기계를 향해 분풀이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가지고 온 공구를 동원해 조심조심 내부를 열어 보았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부분, 이 고약하고 괘씸한 기계장치들이 여태까지 움직일 수 있게끔 만든 그 미지의 동력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내부에 작은 배터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보였다. 주변에 놓인 파손된 다른 기계장치들에도 공통된 부분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것이 녀석들의 동력원인 듯했다.


“동력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여기서 머리 굴려봤자 아까운 탐사 시간만 허비될 테니 일단 넘기고…”


레온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정크를 살피며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흘렸다. 심하게 거슬릴 정도, 그리고 탐사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파손된 부분이 명확하게 보였다.


“일백 퍼센트 수리 당첨이네.”


다행히 기동이나 내부 부품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각한 정도의 파손은 아니었고, 제일 중요한 카메라 부분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대충 임시처치를 해 두면 탐사를 마치고 함내에 돌아갈 때까진 멀쩡할 것이다. 정크의 부서진 부분을 바라보던 레온의 머릿속에 어느 날 조슈아가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어느 날 정크가 부서져서 못 쓰게 되어도, 정크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품이 있다면 렌 너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때 레온은 조슈아에게 이런 내용의 답을 돌려주었었다. ‘정크를 대신할 그 대체품이 내가 만들었느냐, 아니냐에 따라선 좀 다를지도 몰라. 하지만 조쉬, 지금의 정크 역시도 내가 맨 처음에 만들었던 정크랑은 외관도, 내부도 완전 다르다고! 개조를 엄청나게 많이 했단 말야.’


그날의 대화를 떠올린 이유는 아무래도 정크가 노력이 들어간 만큼 좀 더 정이 가는 기계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레온이 첫 탐사에서 돌아온 이후, 그리고 파종절 기간 동안 일과를 보내는 동시에 틈틈이 밤잠도 아껴 가며 여러 가지 외장을 구상하다 못해 A1-3에 대한 대략적인 데이터를 받자마자 공을 들여 개조한 정크가 그놈의 예상치 못한 (알렉산드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버르장머리 없기 그지없는’ 기계장치들의 공격 때문에 탐사 하루, 아니 반나절도 못 버티고 허무하게 일백 퍼센트 확실한 수리 엔딩을 맞이했기 때문일까…뭐, 어느 이유든 깊게 생각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레온은 혹시라도 방호복이 찢어질 때를 대비해 긴급 처리용으로 가지고 온 특수 덕트 테이프로 정크의 손상된 외장 부분을 단단히 감아 주고, 아까 분해했던 괘씸한 기계 녀석을 포함해 수거할 만한 다른 기계장치들을 수거하고서는 남은 시간을 살폈다.

아직 탐사 시간은 좀 더 남아 있으니 레온은 주어진 시간 동안 행성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정크의 파손은 탐사나 조사에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는 기계장치에 대한 대책도 한번 대치해 본 결괏값으로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으니까. 다른 유형의 기계장치가 존재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만약 들어갈 수 있다면 건물 내부도 한번 살펴볼 수 있을 것이고,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한다면 무너진 건물의 틈 사이로 정크를 대신 정찰 보내 건물 내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운이 좋다면 멀쩡한 형태의 기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샅샅이 조사하려면 역시 여덟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동을 멈춰버린 기계장치와 반파된 마천루를 비롯한 구조물들, 그리고 지적 생명체였던 것의 뼈대가 즐비한 죽은 도시의 무덤에서 휴식을 취하며, 레온은 머릿속으로 탐사를 마치고 돌아가면 다음 탐사에 대비해 새로 마련할 장비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그 항목에는 소소한 물품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보안경 아래 쓸 수 있는 타입의, 더 넓은 시야 보조 기능이 들어간 특수 안경이었다.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탐사에 중요하다, 매우! 그것은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레온이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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