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 의사를 밝히고 지원서를 제출한 월터는 항상 사탕을 넣어 두는 웃옷 주머니에서 딸기맛 사탕을 꺼내 포장지를 벗겼다. 이것은 평소 먹던 인공 딸기향과 딸기 모양으로 딸기라는 구색만 갖춘 딸기향 사탕 대신 조금 더 고급진 딸기맛 막대사탕이었다. 오늘은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했다'는 큰 결단을 내린 조금 특별한 날인 만큼, 자기 자신에게 소소하게 포상을 줘도 괜찮다고 생각한 월터가 선택한 오늘의 사탕이었다. 월터가 막대사탕을 우물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서 있는 동안, 월터의 눈앞에 다가온 누군가가 그의 웃옷 주머니에서 사탕을 가져가려다가 월터의 민첩한 손놀림에 손목을 잡히고야 말았다. 월터에게 손목을 붙잡힌 손목의 주인,토드 바라캇은 월터를 향해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쳇, 오늘도 어김없이 꽝이네. 이번이 32번째 시도 중 32번째 실패인 듯. 아마도? 너 나 몰래 안 보이는 곳에 기어 찬 건 아니지? 월터 워커 씨!"
"나 말고 특수부 소속의 다른 사람들도 기어 없이 널 제지하는 건 가능할 거야, 토드."
월터는 사탕을 꺼내 상대에게 내밀었다.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굳이 그렇게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돼."
"하지만 월트, 뭐든 노력과 수고를 들인 끝에 손에 넣은 게 백배 천배는 더 각별하다고! 이를테면, 네 사탕을 뺏어 먹는 것도 이 토드 바라캇 님의 노력과 수고에 포함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토드는 월터가 내민 사탕을 거절하지 않았다. 능청맞게 웃으며 사탕 포장지를 벗겨 입에 물며 월터의 옆에 선 토드가 월터를 찾아온 본론을 입에 담았다.
"이봐, 월트."
"응.“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했지?"
"맞아."
월터가 아드바니 특수부장이 모집하는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그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아는 월터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자신의 무난하고도 평범한 일상 루틴에 어떠한 변화 요소가 끼어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즉, 모험에 자진해서 지원하고 뛰어드는 부류의 사람이 전혀 아닌 월터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 루틴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놀랄 노 자였다. 특히 지금처럼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는 더더욱.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월터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던 걸까? 누가 봐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므로. 그리고 토드도 월터의 선택에 놀란 그의 주변인 중 한 사람이었다.
"이봐, 도대체 무슨 바람이 다 불었길래 그 월터 워커 씨께서 몸소 자진해서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한 거야? 인제 와서 시민권을 획득할 생각이라도 든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냐. 이대로 이 사태를 관망하기만 한다면, 내가 누리고픈 평온한 일상은 없을 것 같았거든."
"난 또, 네 심경의 변화라도 있는 줄 알았지. 부모님 때문이야?"
"그것도 있고."
토드의 추측은 월터가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한 이유를 구성하는 것 중 하나를 관통했으므로, 월터는 굳이 상세한 부분까지 정정하거나 부연 설명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해 굳이 더 덧붙여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가 평온한 일상의 보전을 위해 임무에 지원한 것은 사실이었고, 부모님도 그의 평온한 일상, 그 일부에 들어가 있었으니까.
월터의 부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운 좋게 시민으로 선발되었지만, 그들 가족은 시민권을 얻었음에도 오시리스 구역으로 이주하기보다는 세트 구역에 남기를 선택했다. 분명 처음에는 시민권을 얻기 위해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인 아웃스커트에 정착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정들면 다 고향이라는 말처럼, 그들이 시민권을 위해 아웃스커트에 정착한 몇 년간 그 곳에서 그들 가족은 좋으나 싫으나 정착을 위한 기반을 쌓을 수 밖에 없었다. 직장, 이웃, 집안, 동료, 구태여 지면을 할애해 설명하기도 모호한 사소한 것들, 기타 등등… 그들 부모에게 아웃스커트는 시도 때도 없이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다’라며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정들 수밖에 없는 고향 아닌 고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년의 시간을 걸쳐 쌓아 온 그것은 그들의 인생 대부분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그런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 처음부터 다시 기반을 다진다는 것은 일종의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도 같은’ 모험이었고, 그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일이었다. 비록 시민권을 원한 만큼 오시리스 구역에 정착하기를 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워커 부부는 더 이상의 이주 스트레스를 겪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그토록 갈망하고 꿈꾸던 오시리스 구역의 어딘가에 정착하기보단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익숙한 아웃스커트에 남아 있기를 택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워커 부부가 이주를 보류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자식인 월터 때문이었다. 그들 부부와는 달리 월터는 시민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운 좋게 시민권을 획득했던 워커 부부는 월터의 시민권 발급에 관해 다소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희망 사항과는 다르게 월터는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월터는 그 사실에 딱히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의 부모는 그것을 달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월터가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항상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때로는 그 사실을 무척 안타깝게 여겼으니까.
그래서일까? 월터가 에스퍼로 각성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소식을 들은 그의 부모는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기쁘게 생각했더랬다.
'다행이야 월터. 너도 특수부에 들어가 아드바니 씨처럼 큰 업적을 세우면 시민권을 받을 가능성이 있잖니. 넌 벌써 몇 년이나 시민권을 받지 못했고…'
그 뒤에는 항상 이어지는 걱정. 이미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은 말이라 월터는 나머지 말은 대충 흘려들었다. 그들의 말은 부모로써 순수하게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성질의 무언가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워커 부부가 월터의 부모로써 하는 걱정이고 염려였을 뿐, 월터 본인은 시민권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욕심도, 생각도 없었으니까. 월터에게 있어서 시민권이란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언가였다. 시민권이 없어도 지금까지 아웃스커트에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게다가 월터 본인도 출세에 관심이 큰 편이 아니었으므로, 지금 이대로 현상 유지만 하고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시민권을 딴다고 해서 그의 생활이 좀 더 나아질지 아닐지는… 글쎄,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고, 없는 걸 갖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해봤자 의미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다행인 걸까? 난 이대로 살아도 상관없는데.'
월터는 딱히 공을 세울 생각도, 시민권에 대한 욕심도 크게 없었다. 그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도 범인(凡人)이니 살면서 이런저런 불편이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질 수 있는 수준의 불평불만이었다. 주변에서 시민권이니, 현 체제에 관련해 이런저런 불만 섞인 이야기가 들려온다 해도 월터는 동요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 월터에게 있어선 그것도 그저 평온한 일상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그의 인생에서 단 한 가지의 큰 변수나 모험이라고 할 것이 있었다면… 굳이 따지자면 그가 대략 일 년 하고도 반년쯤 전(정확한 개월 수는 모르지만 아마 그쯤이라고 월터는 생각했다)에 에스퍼로 각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특수부에서 일할 것을 권유받고, 그곳에 소속된 것뿐이었을까? 특수부 활동은 상근 업무가 아니었음에도 평소의 익숙한 루틴에 새로운 것을 끼워 넣느라 처음엔 이에 적응하기까지 이래저래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터였다. 오히려 그 상근 업무가 아니라는 점이 월터가 아웃스커트에서 평소에 하던 일들, 월터가 익숙해 마지않는 일상에 혁신적인 변화를 주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달까.
어느새 막대에서 사탕을 깔끔하게 빼낸 토드가 사탕 막대를 들어 비장하게 월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입안에는 여전히 사탕을 우물거린 채로.
비록 고정된 직업은 없었지만, 월터는 특수부에 들어가기 전에도 자신의 특기를 살려 다양한 일을 도맡아 하며, 비록 풍족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만족할 정도로 먹고살았더랬다. 에스퍼 각성 전에도 월터는 주변에서 몸이 날래고 민첩한 편이라는 소리를 적잖이 듣고는 했는데, 그는 자신의 민첩함이라는 특기를 살려 간단한 배달 일이나 식당 서빙 같은 일 등, 자신의 속도를 살릴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몸싸움에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나 민첩함을 살려 싸움질을 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으므로, 그는 프리랜서 보디가드를 자처해 일감을 받고는 했다. 대개는 깽판을 치는 허접한 어중이떠중이 불량배들이나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는 난폭한 취객들을 제압하거나 그들의 머리 위로 물을 시원하게 끼얹어 주는 소소한 일들이었다. 가끔은 도시 유적에서 유물을 찾는 이들(사비로 의뢰하는 스캐빈저가 대부분이었으나, 개중에는 정부 몰래 유물을 발굴해 연구하려는 도시 고고학자도 있었다)의 경호를 맡기도 했었다. 비록 특수부에 들어간 후로는 특수부를 통해 의뢰를 받는 쪽에 중점을 두었지만 말이다.
특수부에 들어간 지금도 월터에게 일감은 꾸준하게 들어오고 있었기에 그는 특수부 활동 외에도 일을 알선받거나 자경단 일을 돕는 등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에게 일감이 꾸준히 들어오는 이유는 워낙 우직하고 성실한 성정인 탓에 들어온 부탁은 어지간해서는 거절하지 않고 맡아 하는 것은 물론이요 받은 일의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기 때문에 의뢰자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꽤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기 때문이었다.
제 역할을 다한 사탕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입 안에 든 사탕을 깨물어 씹어 삼킨 토드가 말했다.
"뭐, 시민권도 시민권이지만 토벌에 성공한다면 평생 생계보장이 될 만한 보수를 준다고 했으니까, 네가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평온한 일상은 확실하게 보장되겠지."
변화보다는 안정. 다듬어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개척하기보다는, 앞서 나간 선구자들이 밟아 다져 놓은 땅을 밟아 나아가는 사람, 모험을 즐기지 않는 사람 혹은 평범한 삶에 안주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평범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구덩이로 나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월터가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지원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가족과 지인을 비롯한 그의 주변인, 그의 일상과 삶을 구성하는 그것들을 지키고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서. 게다가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더더욱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토벌에 관한 것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월터에게는 지금 당장 눈앞의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더 중요했다.
월터는 사탕 막대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좋겠네."
"어쨌든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월트. 이런 일상이 계속될지 아닐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해도 나쁠 건 없잖아. 가만히 있다가 개죽음당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뭐 아무튼! 행운을 빌게, 월트. 하고 덧붙인 토드는 월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손 인사를 보내며 자리를 떴다. 토드에게 마주 고개를 까닥여 보이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한 월터는 사탕이 다 녹아 사라진 막대만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사탕은 맛있었다. 그는 만에 하나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선발되어 자기 자신에게 포상을 줄 일이 생긴다면 자축 겸 포상의 의미로 이 사탕을 한 번 더 사 먹어야지 생각했다. 하나만으로는 자축이라 말하기 부족하니 이번에는 두 개, 아니 세 개를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월터는 입에서 사탕 막대를 끄집어내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항상 즐겨 먹는 딸기향 사탕을 꺼내 포장지를 벗기곤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