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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M1~E1 사이 시점

이번 임무의 주목적인 아드바니 특수부장의 구출은 무사히 이뤄졌고, 주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사건 하나는 ‘일단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인면괴수와 '성녀'라고 불리는 여성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라진 말 등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봤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생각해봤자 소용없었으므로 월터는 이번 일에 남은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확실한 퍼즐이 맞춰지지 않은 현재, 고민해봤자 답이 안 나오는 문제에 매달려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았다.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었으나, 한정된 시간 내에서 일을 짜 맞추는 데에는 이골이 났으므로.

 

그런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일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오늘도 월터는 익숙한 구인 앱을 열어 할 만한 일감이 있나 살폈다. 그 순간, 휴대폰 화면 위로 메시지 알림이 하나 떴다. 덴버 치안국장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올 게 왔군.’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메시지의 내용을 살폈다. 하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월터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임무가 아닌 초대장. 거기에는 오는 1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인공 호수 위에서 열리는 초호화 선상 파티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초호화 선상 파티라니? 내용을 읽은 월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용을 다시 한번 살폈다.

 

파티에는 몇 번 간 적이 있다. 물론 주역이나 빈객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하지만 초대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처음이 온갖 유명인사들이 몰린 초호화 선상 파티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월터는 초대장을 읽기만 하고 참여를 보류할까, 하고 잠깐 생각에 빠졌으나 이것 또한 오퍼레이션 마아트, 임무의 일환이면 참여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다음으로 퍼뜩 떠오른 것은 의상이었다. 치안국 소속 에스퍼로써 초대받은 입장에 제일 깨끗한 작업복 차림이나, 아무리 다린다고 해도 후줄근한 남방셔츠 같은 걸 입고 갈 순 없지 않은가.

 

파티 같은 화려한 행사는 자신과 일평생 연이 없을, 다른 세계의 무언가라 치부했기에 이런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어차피 참여하기로 한 이상, 기왕 임무의 일환이면 옷차림만이라도 잘 꾸며 입어야지 생각했다. 그러면 상류층 인사들이 즐비한 파티에 가서도 입만 다물고 튀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눈에 띌 일은 없을 테니까. 다행히도 당장 쓸 수 있는 저금이 어느 정도 있었다. 지출이 상당히 나갈 것 같았지만, 월터는 이 문제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일 때문에 쓸 일이 거의 없었던 저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복을 사 두면 언젠가 한 번 더 입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록 그 ‘언젠가’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이번 한 번으로 끝일지도 모르지만.

 

‘임무를 위한 품위 유지비 정도로 생각하고, 딱 이틀만 참여하면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월터는 엄청나게 신 사탕을 입에 물었다. 타란 잡화점에서 산 엄청나게 신 사탕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떨어지기 전에 더 사놔야겠다고 생각하며, 월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준비해도 시간이 촉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패션 잡지를 파는 서점이 있을까? 서점에 없다면 잡화점에는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뭐라도 하나 살펴봐야겠다며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을 벌 수 있기 시작한 나이부터 거의 비는 시간대 없이, 잠을 자는 시간이나 이동 시간 빼고는 거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지라, 이 시간대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파티의 사전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스캐밴저들이나 도시 고고학자들이 가끔 유물 발굴에 앞서 월터에게 답사지의 선행 탐사를 부탁하는 일도 종종 있긴 했지만, 그것은 추가로 착수금을 받는 일이었고, 일상이었다. 이것은 월터의 일상 루틴과는 전혀 먼, 예상외의 변수였다.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도 앞서 특수부에 지원할 때, 그리고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참여할 때 이미 감내하기로 한 일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감내해야지, 감내해야지.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나서 거리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봐, 소식 들었어. 월트.”

 

돌아보지 않아도 저 독특한 어투는 분명 ‘참견쟁이’ 토드 바라캇이었다. 월터는 한숨을 쉬며, 입 안에 신 사탕을 하나 더 까 넣었다. 토드는 썩 괜찮은 녀석이었지만, 월터를 종종 귀찮게 하곤 만드는 사람이었다. 저 녀석, 마당발인 데다가 소문에 능한 ‘참견쟁이’인 만큼 분명히 어디서 또 오퍼레이션 마아트에 대한 대략적인 소식을 듣고는 찾아온 거겠지… 월터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 한 마디로 토드의 말을 막았다.

 

“잘 알고 있네. 바쁘니까 말 걸지 마.”

“우와, 매정해라. 하지만 뭣 때문에 바쁜진 알겠네.”

“용건이 뭔데. 짧게 말해.”

“패션 잡지 추천이라도 해 주려고 했지.”

 

저 녀석, 마당발답게 어디서 재빨리 소식을 주워들은 모양이다. 토드는 시민 등급인 만큼 자신의 위치를 잘 활용해 오시리스 구역과 세트 구역을, 이너서클 곳곳과 아웃스커트 곳곳을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실로 훌륭한 ‘참견쟁이’다운 짓이었다. 이 ‘참견쟁이’의 제안에 월터가 그럴싸한 반응을 보이거나 대답하지 않자, 토드는 좀이 쑤시기라도 했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원한다면 옷도 골라줄 수 있는데 말야…”

“그건 사절. 잡지 이름만 대충 말해.”

“우와, 월트 넌 가끔은 되게 매정하다니까.”

“네가 너무 참견하는 거겠지. 더 시간 끌 거면 난 간다.”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월터의 뒤통수에 대고 토드가 다급하게 잡지 이름을 몇 권 불러주었다. 월터는 토드가 불러준 잡지들의 이름을 대충 적고는, 감사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문득 토드의 볼멘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이봐, 감사 인사라도 좀 듣자!”

“…성가셔 죽겠네.”

 

애초에 자기가 멋대로 참견한 주제에 왜 감사 인사까지 받고 싶어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월터는 귀찮다는 듯 몸을 돌리는 동시에, 작업복 앞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토드를 향해 휙 던졌다.

 

“…됐지? 따라오지 마. 너도 잘 알다시피 바쁜 몸이거든.”

“오, 감사. 진즉 그럴 것이지, 튕기기는.”

 

월터가 던진 사탕을 토드가 한 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는 포장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사탕을 입에 넣고 몇 번 굴리던 토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월터는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됐지? 간다.”

 

월터의 뒤통수에 대고 토드가 과장된, 울상 어린 목소리로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월터는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그가 쫓아올세라 일부러 아웃스커트 토박이들만 아는 골목으로 가는 것은 덤이었다. 저 참견쟁이가 하는 말은, 어차피 들을 가치도 없는 쓸데없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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