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월터 워커의 세계가 <주정뱅이들의 낙원>을 벗어나 조금 더 넓어진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린 날의 월터 워커 역시도 꿈이 없는 어린이였다. 자신의 그릇과 도량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아웃스커트의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망상하고는 하는 '아웃스커트를 나가서 (시민 등급을 얻어 이너서클로 들어가든, 스캐밴저가 되어 엄청나게 값어치가 있는 보물을 파내든, 아니면 괴수를 여럿 때려잡은 영웅이 되든)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요지의 내용이 담긴 망상마저도 하지 않았다.
월터는 자신이 그 어느 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동시에, 그 자신이 특출나거나 돋보이는 재주가 없는 사람임을 다른 누구보다 빨리 깨달았다. 자신은 야망이 없는 만큼 그저 익숙한 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범하게 사는 것,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놀랍게도 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재주가 없는 만큼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일찌감치 알았다.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그리고 그 생계를 유지하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은 <주정뱅이들의 낙원>에 맡겨두고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하는 것을, 그리고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쉬는 것을 보거나 돈 문제로 종종 골머리를 앓거나 서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는 일을 보면서 자랐으니까. 어쨌든 '숨만 쉬는데도 돈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보다 더 빠르게 빠져 나간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버는 족속 빠져나가기 때문에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고작 숨구멍 하나만 내는 것으로는 숨을 쉴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숨구멍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것은 월터가 부모님을 보면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월터는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자신을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일했다. 한번 일에 재미를 붙이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 학교보다 일의 비중이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사회, 그리고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월터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월터는 적어도 현장에서 배우는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했으며, 자기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월터에게 힘을 주기도 했다. 월터에게 있어서 경제 행위는 사회 경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에게는 아무리 책상에서 공부해도 알려주지 않는 현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러기에 더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으니까. 월터는 의무교육 기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글자와 셈하기 외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월터에겐 많았다. 월터가 보기엔 학교에서는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월터가 배우고 싶은 것은 아웃스커트, 나아가 사회에서 지속적인,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며 생존하는 법이었다.
서로의 살을 취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사회란 잔혹하고도 냉정한 곳이었다. 자본, 즉 돈이 거의 세상의 전부인 곳에서는 사람들이 냉혹해지기 마련이다. 남의 주머니, 즉 고용주의 주머니에서 정당한 보수를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고용인의 시간과 노동력에 응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아까워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은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도 빠져나갔다.
게다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보이지 않는 감정과 갈등, 그 감정선들이 생각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이란 원체 복잡한 생물이라, 말과 속내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더랬다. 월터는 그것을 자신에게 괜한 '분풀이'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 분풀이는 대놓고 하든 은연중에 하든 차이가 있었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별것도 아닌 문제로 다짜고짜 트집'을 잡는 패턴으로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일에 대한 스트레스든, 월터의 부모님인 워커 부부에 대한 열등감이나 질투심이든, 어떤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든 간에 말이다.
한때 체류민이었던 워커 부부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입지를 쌓아온 것과 그들의 자식인 월터 워커가 돈을 떼먹히는 것은 별개의 일인 것을 월터 자신이 알아채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겉으로는 표를 내지 않아도 '운 좋게 쌍으로' 시민권을 받은 워커 부부를 남몰래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워커 부부보다 일찍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정작 그들이 괴롭히는 워커 부부의 자식인 월터는 그들과 같은 체류민이었는데도. 하지만 월터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아 했다. 단지 부모님의 일인데 왜 자기에게 화풀이를 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들의 감정 문제까지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일하고는 관련 없는 문제였다. 그들의 감정 같은 것은 돈을 버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애초에 ‘왜 마음을 불편하게 한 당사자에게 따지지 않고 애먼 사람에게 따지는가’의 문제는 월터가 이해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술집 <주정뱅이들의 낙원>의 융 할멈은 월터의 일솜씨에 투덜거리고, 그가 실수라도 하거나 머뭇거릴라치면 험한 말을 퍼붓곤 했다. 하지만 그는 살뜰하게 월터를 챙겨 주는 어른 중 하나였다. 적어도 일당은 떼먹지 않거나 오히려 더 넣어주곤 했으니까. 월터는 융 할멈에게 책 잡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기를 쓰는 과정에서 일머리가 상당히 늘곤 했다. 그 외에는 요령 없이 무식하게 이런 일을 하려고 한 월터에게 이런저런 요령을 가르쳐 준 아르바이트 선배들이 있었다. 다들 어조와 행동거지는 달라도 월터에게 더 쉽게 일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지 않았다. 사실은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의 비중이 더 컸다. 누가 봐도 미성년자인 데다가 어수룩해 보인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표정과 말들로 줘야 할 돈도 주지 않는 악덕 업주들이 그 중 하나였다. 주로 어수룩하거나 누가 봐도 푼돈이 간절한 사람들, 특히 뭣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을 감언이설로 속여넘기거나 으름장을 놓거나 갈궈서 그런 식으로 '돈을 아끼는' 악질적인 업주들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의구심을 느끼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순순히 받아 갔지만 자기가 받는 일당이 터무니없음을 알게 되자마자 헛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너무 안일하게 살았구나, 생각했다. 떼먹힌 돈만큼 배운 것이 있다고 넘어가기에는, 이대로 두고 넘어가면 몇 년 동안 불현듯 두고두고 떼먹힌 것이 생각날 액수였다.
‘몇 푼 못 받는다고 죽지 않는다고 한다면, 몇 대 맞는다고 죽지도 않지.’
그렇게 생각한 월터 워커는 그때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튼 결코 평화로운 협상은 아니었던, 떼먹힌 월급을 받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보다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 재능은 몇 번 더 시비에 걸리고 드잡이할 일이 생기고 나서야 점점 꽃피우게 되었다. 싸움을 통하지 않아도 협잡질이나 그럴싸한 구색을 드밀어서 상대가 입을 다물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월터는 그렇게 학교 책상이 아닌 바깥에서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꿈이 없고 특출난 능력이나 공부머리가 없는 만큼 이 세상에 대해서 더 빨리 알아야만 했다. 그것이 아웃스커트에서, 부모와 이웃의 보호 아래 운 좋게 평범하게 살던 어린아이가 겪기에는 충격적이다 못해 구역질나는 쓴맛이라고 해도. 세상은 원래 황홀한 단맛보다는 구역질 나는 쓴맛이 더 많은 곳이라는 것을 빨리 알아서 나쁠 건 없다고, 월터 워커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