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 | ■■■ ■■ 하루
1월 6일. 그날도 하람은 평소처럼 공의 확장이 의심되는 전유지 전환 작업을 마쳤다. 변태 집ㄷ…아니, <아키텍트>에 협력해 간단한, 기본적인 방식의 전유술을 배운 이후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하람이 전유술사들로부터 전유술을 처음 배웠을 때, 생각보다 전유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하람의 모습을 본 전유술사들은 ‘생각보다 편견이 없다’는 평을 내렸다. 정작 그 말을 들은 하람은 이렇게 대답했지만.
“결계술이든 전유술이든, 결국 언령으로 구현한 건 똑같잖아요~”
그 말대로였다. 결계술이든 전유술이든 결국 근본은 언령을 시동어 삼아 작동하는 방식이었고, 하람에겐 둘 다 별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그러나 하람의 대답을 들은 전유술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전유술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 간단한 사실을 ‘알면서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적어도 하람은 그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졌다나 뭐라나.
그래봤자 결계술이나 전유술이나,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을 구현할 수 없다는 건 똑같았다. 즉 상상력이 부족한 하람에겐 그거나 저거나 크게 다를 바 없단 소리였다. 구현할 수 있는 데 시전자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 똑같다면, 만약 전유술을 본격적으로 배운다고 해도 하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을 터였다.
지금도 그랬다. 출입 금지 구역, 폐건물이 잔뜩 늘어서 있었던 허슬턴 북부의 골목, 더엣지의 미로 같은 골목, 얽힌 사슬, 도원에서 보았던 호수 등…. 하람이 만들어내는 ‘공의 전진을 막는 적절한 형태’의 모양새는 다 현실에 존재하는, 하람이 보고 겪었던 경험의 총집합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하람은 제가 구현한 수족관의 두꺼운 아크릴 벽 같은 모양새로 구현한 장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벽에는 투명한 사슬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공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이 특유의 감각은 아직도 기묘하게만 느껴졌다. 저 자신의 존재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뒤얽히는 느낌.
하지만 마주해야만 했다.
내면의 두려움을 직면해도, 그 과정이 고통스러워도 주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나아가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람은 자리에 앉아 웃옷 안주머니에서 항상 지니고 다니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 익숙한 손동작으로 불을 붙였다. 딸깍 띵.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는 청아한 소리와 함께 치이익. 불이 붙었다. 담배 끝에 불을 붙인 하람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담배를 다 태운 하람은 담배 꽁초를 떨어뜨리곤 남은 불씨를 발로 비벼 껐다. 지포 라이터를 옷 안에 집어넣고는, 다음으로는 철제 성냥갑을 꺼냈다. 지포 라이터와 함께 하람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하람은 철제 성냥갑을 열고는, 그 속에 든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니, 어느새 1월 7일 자정이었다.
“…그럼 돌아갈까~?”
오늘 할 일은 마쳤으니, 도원으로 복귀해야 했다. 하람은 읽던 편지지를 접어 철제 성냥갑 안에 집어넣고는, 그 성냥갑을 다시 웃옷 안주머니 깊은 곳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도원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도원으로 복귀하던 중, 하람은 심상찮은 이야기를 들었다. 허슬턴 북부의 거주 구역에서 공의 파도가 덮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아키텍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의 확장이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곳까지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는데. 상황이 갑작스럽게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든 건 확실했다.
하람은 그 자리에서 방향을 돌렸다. 공의 파도가 발생한 허슬턴 북부 쪽으로.
허슬턴 북부에 도착했을 때, 심상찮은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몸의 잔털이 삐죽 솟을 정도로 심상찮은 감각이 느껴졌다. 이 감각은 분명 공이었다. 24일 도원에서 공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 형체 없는 공간이 내는 소리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와닿았던 순간을.
그것은 하람에게 이리 물었었다.
‘너는 무엇이냐’
‘너는 왜 존재하느냐?’
예전, 아니, 최근까지의 하람이라면 저 질문을 들었다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람은 삶을 살면서도 살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살아남은 제 삶을 기꺼이 누리기에 죄책감을 느꼈기에, 죽은 자의 삶을 제 삶에 은연중에 투영하고 덧씌우며 살았다. 살아가는 데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생존과 죄책감에 짓눌려 자신의 욕망을 내심 알고 있었으면서도 언제나 덮어 두었다.
―그랬었다.
Esto quod es.
하람이 지포 라이터와 함께 항상 가지고 다니는 성냥갑에 들어 있는, A팀 합류 초기의 어느 날 드베르토에게 받았던 편지의 맨 끝에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하람은 드베르토에게 이 문장을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드베르토는 그것을 설명해 주었었다. 에스토 쿼드 에스.
‘가장 자신다운 사람이 되어라.’
마음속에 새긴 그 문장은 하람에게 하나의 지표이자 길잡이별이었다. 도원에서 보았던 호수보다 더 큰 규모로 덮쳐오는 공의 파도를 눈앞에 두고서도, 하람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의연할 수 있었다.
나는 권하람이고, ‘내’가 바라고자 하는 것은 명확하다. ‘나’는 그저―
∎∎∎ ∎∎∎ ∎∎∎ ∎∎!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위해, 하람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할 것은 확실하다! 제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땅이 발을 박차고 달린다. 발이 가볍다, 몸이 가볍다, 마음이 가볍다. 신기할 정도로. 미지의 공포에 차 공의 파도를 뒤로하고 도망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달린다.
달려 나간다.
**
허슬턴 북부에 도착한 하람은 공의 파도와 인접한 곳에 있던 사람들의 대피를 돕던 와중, 하람의 시야각에 한 아이가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넘어진 그대로 일어나려 애쓰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본 하람은 망설임 없이 아이를 향해 뛰어갔다. 공의 파도가 거의 코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하람은 아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때처럼.
그 달리는 지하철 속 공화 속에서, 선로 너머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 몸을 던질 때처럼, 몸을 던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팀장님의 명령, 그리고 회사의 규정이기 때문에 따랐다는 게 더 컸지만, 지금은 온전히 제 의지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는 것일까. 상사의 명령과 회사의 규정엔 칭찬과 월급이라는 형태가 분명한 보상이 있었고, 그 보상은 하람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이처럼 형태가 분명하고 만족스러운 보상이 있으면, 타인을 위해 제 몸을 던지는 일 역시도 기꺼웠다. 즉, 따를 이유가 분명했다!
허나 지금 하람이 한 행동은, 보상 같은 건 없는 일이다. 알면서도 제 의지로 제 몸을 던지는 건, 아마도 처음? 아니,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최근에도. 무도회장에서 벌어졌던 공화. 그 공화 속에서 하람은 분명 제 의지로 몸을 던졌었다.
왜일까?
왜인 걸까?
하람은 아이를 감싼 채, 거의 눈앞까지 다가와 넘실거리는 공의 파도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기에 말려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은 그 찰나의 틈을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공이 하람에게 속삭인다.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지?’
‘보상도, 대가도 없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네가 몸을 던져야 할 이유가 있나?’
제 마음을 파고드는 속삭임. 예전의 하람 같았으면 그 속삭임에 공감했을 터였다. 보상이나 대가가 없는 것에 몸을 던지는 건 의미도 없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하지만,
그 공화 속에서 지후가 왜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켜냈는지, 수족관의 모습을 한 공화 속에서 드베르토가 왜 거듭되는 부상이나 죽음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앞에 섰는지, 프로스페리티의 공화에서 제시카가 왜 망설임 없이 인질이 된 자신을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는지, 드베르토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몸을 던져 꺼졌던 불꽃을 되살렸던 지금의 하람은 어렴풋이 알았다.
눈앞에 공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속삭이든, 마음에 한 점 미혹이 없는 이상 그저 의미 없는 말이었다. 망설임 따윈 없다. 제가 해야만 할 것, 그리고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명확한 만큼 말할 필요도 없다!
한 달쯤 전, 드베르토를 따라 함께 참여했던 파티에서 벌어졌던 공화 속에서 있었던 일을 하람은 똑똑히 기억한다. 한 바람에 무력하게 꺼졌었던 불꽃이, 기억 속 누군가의 것을 모방한 것이 아닌, 온전히 저 자신만의 의지로 구현되어 타올랐던 순간을.
그것은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 강렬한 갈망으로 타오른 불길이었다.
‘내’가 마음속 깊이 바라는 것은 세계의 구원이라든지, 영웅이 되겠다든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가 ∎∎∎∎ ∎∎∎ ∎∎는 ∎―
그걸 이룰 수 있다면― 결계술이든, 전유술이든, 그 방식은 무슨 상관일까? 어떤 방식이든 좋으니 그저 마음속에 있는 것을 구현해 낼 수밖에.
지금 바라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
∎게 ∎∎∎ ∎∎과 ∎∎∎는 ∎∎∎ ∎∎는 ∎.
난 절대 죽지 않을 거다, 살 거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도 평범한 일상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삶을 꿈꿔 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을 꿈꾸며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직도 ‘사람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하람은 정확히 모른다. 그러기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고, 알아가야만 했다. 확실한 건 하람의 삶, 그리고 그가 바라는 내일은, 일상은, 지금까지 만난 인연들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모습을 갖추고 실존하는 것이다. 허상이 없는 허무 그 자체인 공 따위가 내 존재를, 그리고 이 세계를 갉아먹을 순 없다!
또렷한 확신과 함께 그 찰나의 순간, 하람은 자신이 적확한 언령 없이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순간일 뿐일지라도.
하지만 그 한 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머릿속에, 가슴속에 존재하는 강렬한 갈망, 그리고 소망이 형상을 갖추어 눈앞에 가장 익숙한 형태로 재현되었다. 하람의 저를 덮치려는 공의 파도를 막은 ‘벽’은, 프로스페리티의 공화 속에서 본 사슬이 뒤얽힌 높은 담벼락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국소적으로나마 덮쳐온 공간을 막아낸 하람은, 아이를 안고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내일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일은 뭘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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