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챈과 소문의 아르바이터
※시점: 특수부 들어가기 전
월터 워커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르바이터들, 특히 아웃스커트의 아르바이터들 사이에서는 제법 얼굴이며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터는 조건이 맞는 한 직종 가리지 않고 어떤 곳이든 얼굴을 들이밀었고, 일솜씨도 꽤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일머리가 좋든 아르바이터들이라면 월터 워커와 마주치거나 최소 옷깃 한 번쯤은 스쳤을 터이며, 그도 아니면 ‘월터’ 나 ‘워커’라는 이름을 고용주들에게서 한 번씩은 듣고는 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곤란할 때 월터에게 도움이나 충고를 받았다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몇몇 ‘미담’까지 섞이는 바람에, 월터 워커라는 사람은 과장 조금 보태서 고용주와 아르바이터들 사이에서 질투나 선망의 대상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정작 그 화제의 주인공인 월터 본인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소문의 주인공인 월터 워커와 라포르를 형성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했다. 그들은 월터 워커와 친해지고 싶어 있는 사교성 없는 사교성을 발휘해 그에게 말을 붙이고는 했다. 오늘 날씨 좋죠? 식사하셨어요? 등등. 하지만 월터의 붙임성 없는, 사근사근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심하고 덤덤한 태도와 일 외에 다른 것으로는 융통성 없으리만큼 무심하게 구는 태도가 문제였다. 개중에는 화제를 이어가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못해 그와 어울리기를 먼저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개중에는 월터의 그런 덤덤한 태도에도 포기하지 않고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니 챈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소문의 ‘워커 씨’를 드디어 만났다며 순수하게 기뻐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월터에게 일에 대한 것을 이것저것 묻는 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대신 월터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 그와 라포르 형성을 하기를 택했다(말이 라포르지, 제니가 일방적으로 질문을 쏟아부을 것이 뻔해 보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정말 괜찮겠냐’ 고 넌지시 제니에게 충고를 해 주었으나 (개중에는 월터와 친해지려고 노력해봤으나 진즉 포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제니는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의 재기발랄함으로 월터와 친해지고 말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제니는 가슴을 쭉 펴고,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으스대며 말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포기해 제니.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가 있고, 워커가 그런 사람이야.”
“다들 진심이 아니었던 거 아니에요?”
제니의 농담 섞인 말에 주근깨투성이의 아르바이트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귀찮게 굴었다가는 되려 차일 텐데? 워커가 얼마나 칼 같은 줄 알아? 너 소문이 자자한 ‘참견쟁이 토드’는 알지? 그 참견쟁이도 두손 두발 다 들게 만든 사람이라고.”
“어유, 그 인간은 과할 정도로 들쑤시고 다녀서 문제잖아요. 저는 선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요!”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고는 선 안 넘는 사람 없더라.”
“뭐야,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제니가 발끈했고, 사람들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갈색 콧수염을 가진 아르바이트생은 기어코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그 한 마디를 덧붙이고야 말았지만.
“대개 크든 작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선을 넘을 줄 아는’ 사람이지.”
“흥. 촌스러운 콧수염을 가진 사람의 충고는 안 들어요!”
갈색 콧수염을 가진 아르바이트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말했다.
“뭐 좋아. 백 번 입 아프게 말하느니 한 번 직접 겪어 보는 게 나으니까.”
“두고 봐요!”
제니는 그들을 향해 혀를 쑥 빼 밀어 보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제니를 한 번 보고는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쯤 되면 이제 말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잘해봐.”
말을 마친 그들은 무리를 지어 멀어져 갔다. 제니는 몸을 돌려 그들과 반대 방향, 월터 워커가 방금 사라진 뒷문으로 향했다. 월터 워커가 향한 곳이었다.
굳이 쉬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에게 찾아오길래 일 관련해서 질문을 던질 줄 알았건만. 제니의 입에서 나오는 화제들은 일과는 거리가 먼, ‘시시콜콜한’ 화제들이었다. 월터 워커는 무심한 얼굴로 제니가 하는 질문이나 그가 뒤이어 재잘대는 말들을 가만히 듣고, 가벼운 대답도 던져 주었으나 관련 화제로 대화를 이어가기는커녕 최소한의 맞장구만 쳐 주었으며 (분명 악의는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제니를 더 안달이 나게 했다!), 한술 더 떠서 제니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넌지시 던진 ‘떡밥’들은 질문을 던진 당사자가 약이 바짝 오를 정도로 피해갔다. 사교성 좋고 말 잘 붙이기로는 자신이 있던 제니 챈의 자존심이 휴지처럼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월터의 저 표정이나 태도를 보아하니 악의조차 없어 보여서 더더욱!
‘아무리 철벽이라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약이 바짝 올랐지만, 제니는 포기하지 않고 월터에게 질문을 던졌다.
“취미는 있어요?”
“아르바이트.”
“아니, 그건 취미라고 할 수 없죠!”
월터의 무심한 얼굴을 본 상대방은 설명을 이어갔다.
“제 말은 그러니까, 문화생활 같은 거요. 독서를 한다든지, 드라마를 본다든지 하는 거 말이에요.”
“그렇다면 없다고 해야겠군.”
“네에? 워커 씨, 진짜 재미없게 사시네요!”
“취미에는 크든 작든 돈이 드는 것은 물론 시간이 드니까. 그 시간에 일을 해서 돈을 더 버는 게 나아.”
“와, 진짜 뭐만 하면 일이랑 돈 생각밖에 안 하나 보네요. 저라면 그렇게 살면 지루해서 죽을 거예요.”
“곧 쉬는 시간 끝나.”
그렇게 대꾸한 월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뒷문으로 향했다. 제니는 약이 바짝 올라 월터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그러니까 워커 씨가 재미없다, 딱딱하다는 소리나 듣는 거라고요!”
월터는 수십 번 수백 번, 가깝든 멀든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어본 그 말에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을 뿐이다. 약이 바짝 오른 제니가 성큼성큼 걸어와 월터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
“아, 이러기에요? 제가 점심까지 포기하면서 워커 씨랑 좀 친해져 보려고 했는데! 이러시면 제가 점심을 포기한 보람이 없잖아요!”
“그거 안 됐군.”
“아, 안 됐다고만 말하지 말고, 미안하면 일 끝나고 밥이라도 좀 사 줘요!”
월터는 고개를 돌려 제니를 바라보았다. 그의 무심한, 흰색에 가까운 연한 푸른색 눈동자가 제니의 금갈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월터가 말했다.
“누구 밥 사주는 건 내 취미가 아닌데.”
“아, 누가 취미 없는 거 모른대요?”
“미안하지만 이 이후에도 선약이 있어서.”
“뭐야, 또 아르바이트예요? 그 잠깐의 시간도 못 낸다고요? 이럴 순 없어. 어딘데요? 아웃스커트 끝까지, 아니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뜯어낼 거야!”
물론 월터가 순순히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던진 말이었으나―
“<챔프즈 구디즈>.”
“헉.”
의외로 순순히 나온 대답에 제니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아니 뭐야, 이 사람? 진짜 사 주려는 거야? 제니는 미심쩍은 눈으로 월터의 팔을 붙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월터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며 그 무심한 표정이나 담담한 눈빛 아래 있을 법한 실마리를 읽으려고 애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월터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예의 그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따라올 거라면 팬케이크 하나는 사줄 수 있어.”
제니의 금갈색 눈이 더 동그랗게 커졌다. 제니의 손에서 팔을 빼낸 월터는 몸을 돌려 문 안으로 향했다.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제니가 채근했다.
“진짜죠? 무르기 없기야!”
“난 약속한 건 안 물러.”
월터가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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